2020 김장, 그리고 생각의 흐름. 엄마. 토리라이프

⬇ 엄청난 김치통들. 빨간통 우리꺼, 진한 갈색 및 초록색 이모네꺼







⬇ 토요 프로그램 관리를 마치고 와보니 이미 다 마무리 단계였다.


우리집은 김장을 일찍 하는 편이다. 항상 일요일 아침에 했던 것 같은데 이번엔 일요일 날씨 때문인지 토요일 아침에 김치 속 채우기를 한다고 하신다. 이모댁이 주택이라 이모댁 마당에서 항상 모여 김장을 했는데 이번엔 내가 우리 학교 원어민 교사를 초대했다. 작년부터 김치 만드는 걸 하고 싶어 했었는데 때를 놓쳐서 초대하지 못했고 우리끼리라도 해보자 했지만 그게 어디 쉬운일인가? 그래도 올 해는 꼭 같이 해보자고 왔는데 하필 토요일..

매주 토요일은 토요스포츠, 여학생스포츠교실 등 토요프로그램이 있어서 그에 대한 관리가 필요하고 대부분의 토요일 오전을 출근해서 보낸다. 이번 김장도 역시 그래서 쉔이랑 나랑 참가 못하는 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나 끝날 시간 맞춰서 하지 뭐~ 하는 의견이 나와서 신나는 마음으로 근무를 마치고 갔지만.... 역시 김치 속은 이미 다 넣고 겉절이 버무리며 마무리 하고 있었다..




⬇ 하지만 이모가 김장 뉴비인 우리를 위해 몇 포기 남겨 두셨지!




⬇ 점심을 먹고 따뜻한 방바닥에서 몸을 지지다가 다시 오로지 우리(김장 초보:나+쉔)만을 위한 김장 시작! 갓과 쪽파 등 소쿠리에 담겨 있으니 여느 인스타 갬성 사전 못지 않다






⬇ 드디어 주어진 임무. 무 채 만들기

김치 속에 들어가는 무채의 양이 엄청난 것 같다. 채칼로 쓱쓱쓱쓱 무채를 만드는 임무가 주어졌다. 180의 쉔은 긴 다리를 겨우 접고 바닥에 앉아 플라스틱 다라이에 댕강 썰린 무 반토막을 집어 들고 채칼에 비비기 시작했다. 본디 채칼이라는 것의 그 날이 엄청 날카롭고 개인적으로 몇 년 전에 손이 다쳐 응급실에서 꿰매고 온 기억(난 아니지만)이 있어서 괜히 옆에서 보는 나의 심장이 쫄깃해 진다. 채칼이 쓱쓱싹싹 소리를 내다가도 무 조각이 턱! 하고 걸리면 옆에서 지켜보던 나, 조카들 등 쪼무래기 들은 헉! 하고 심장이 나락으로 떨어질 것 같이 호들갑을 떨어댔다.
겨우 보다 못한 유여사님 바톤 터치하고 자리 잡고 앉아 숙련된 무채 장인의 모습을 보여주셨다.





⬇ 그렇게 수북~ 쌓인 무채와 내가 빻아 댔던 마늘 한 보시기




우리는 또 바로 김치 속을 넣는 줄 알고 이제나 저제나 우리 차례를 기다리며 할멈니 둘 사이를 왔다 갔다 했지만 우리 차례는 멀었다. 먼저 물김치(백김치)를 만드시려나 보다. 양은 냄비에 가득 쑤어놓은 풀, 옆 수도 호스에서 물을 콸콸 틀고 마늘 큰 국자 쑴벙 넣고 휘휘 젓는다. 백김치는 보기만 해도 예쁘다. 보기만 해도 엄청 아삭아삭 맛있을 것 같다.





⬇ 드디어 빨간 김치 속 준비. 젓과 젓갈이 이렇게 많이 들어갈 줄은 몰랐다.







⬇ 태어나서 처음으로 절인 배춧잎 사이에 김치 속을 넣으며 김장김치라는 것을 만들어보는 미국인과 한국인



김치 속을 너무 많이 넣어도 안된다고 하는데 대체 어느 정도의 양을 넣어야 하는지 감이 오지 않는다. 근데 옆에서 쉔은 배춧잎 사이사이 김치 속을 넣는게 꼭 설거지 수세미로 그릇 문지르듯 살살 문지르며 그럴 듯 하게 김치 속을 넣고 있었다! 옆에서 그 모습을 계속 지켜보던 두 할머니들은 어디서 해보고 왔냐며 입이 마르도록 칭찬을 해 주시고 나는 옆에서 쭈굴이가 되었다.



어린 시절엔 이모랑 멀리 살아서 우리 집(아파트)에서 직접 엄마가 김치를 담그셨던 기억이 난다. 빨간 목욕 다라이에 밤새 소금물로 배추를 절이고 그 좁았던 17평 주공아파트 거실에 철푸덕 앉아 김치 속을 만드시고 넣으시던 기억. 엄마 손은 항상 그 무언가로 범벅이 되어 있어서 초등학생이었던 톨님은 엄마의 충실한 병따개가 되어 고춧가루병, 소금병, 새우젓병 등등을 땄었고 엄마의 그만 소리가 나올 때까지 무언가를 탈탈 쏟아 넣기도 했었다.


엄마가 김장할 때면 그 옆에서 절인 배춧잎만 뜯어 먹어도 꿀맛이고, 김치 양념을 엄지, 검지손가락으로 한 번만 쑥 훑어서 주시는 배춧잎을 먹어도 꿀맛이었는데. 아직도 엄마는 막내딸이 옆에 서 있으면 와서 너도 좀 거들어 하는 말 대신 배춧잎 하나를 뚝 따서 먹어보라고 건네 주시기만 한다. 그 병따개 초등학생은 이제 삼십 중반이 넘었고 혼자 밤새 배추를 절이던 젊은 엄마도 이젠 호호 할머니가 다 되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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