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6년 1월. 그동안 지냈던 1월과 별 다를바 없었던 그 평범한 겨울날. 올림픽 공원 펜싱 경기장.
-L언니의 엠넷 인맥을 통해 내게로 오게된 초대권 - 이름만 알고 있던 한 일본 가수의 첫 내한공연
-"지금껏 볼 수 없었던, 그 누구도 보여주지 못했던 무대를 보여주겠다."
-그의 말대로 그동안 보지 못했던, 그 누구도 할 수 없었던 굉장한 공연
팬들 사이에선 최악 이라 불리는 밭고랑 머리(콘로우+셋팅의 조합)를 보고 그렇게 나는 G에게 풍덩 빠졌다. 그 전까진 그냥 Gackt 라는 이름을 가진 일본가수가 있다.정도로만 알고 있었지 얼굴도 음악도 전혀 몰랐던 상태였다. 공연 다녀온 후 다음날 바로 라이센스 음반 - 디아볼로즈, 7박 언플러그드, 6일 싱글컬렉션 -을 주문하고 바짝 마른 나무에 단비가 반갑듯 내 귀에 항상 꽂혀있는 이어폰 속에서 흘러나오는 그의 목소리가 내게는 파라다이스가 되어 주었고 정말 끝이 어딘지도 모른채 나의 심장은 쿵쾅쿵쾅 뛰기 시작했다.
굉장히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나조차도 그에게 흠뻑 젖게 될 줄은 몰랐다. 단지 공연 한 번 보고 왔을 뿐인데. 그 전엔 일본이란 나라엔 관심도 없었고 알고 있는 일본 가수는 고등학교 때 친구를 통해 알게 된 모닝구무스메가 전부. 일본어라고는 모시모시 벤또 다꽝이나 좀 알까. 하지만 그런 내가 이제는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해 절대적인 적대감 대신 어느정도의 호기심을 동반한 호감을 갖게 되고 그 나라의 언어를 조금이라도 들어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런게 바로 G가 말하는 문화의 힘일까.
내가 얼굴팬으로 시작한 건 아니지만 사실 그의 미모가 촉매제 역할을 한 건 사실이고 이건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듯 싶다. 처음엔 얼굴만 보였다. 일본 음악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흔치 않았고 일단 제일 먼저 확 들어오는 건 외모였으니까. 일본인 얼굴은 확 티가 난다. 뭐랄까 그 분위기가 있다. 촌스러움?은 아니고 뭐지. 어쨌든 그들만이 가지고 있는 그 느낌. 그 느낌에 익숙하지 않아서 모닝구무스메를 봤을때도 예쁘다는 생각 대신 굉장히 일본스럽다고 생각했고 예쁘다고 생각하기까진 꽤 시간이 걸렸는데 G의 모습엔 바로 적응해 버린 것 같다. 잘생겼다. 아니, 우리나라에서 보통 의미로 사용하는 '잘 생겼다' 보다는 좀 다른 느낌의 잘 생겼다. 어쨌거나 잘 생겼다.
그가 첫번째 내한 공연을 한 지 일년 뒤 내가 팬이 된 지 일년 뒤인 작년 1월. 그는 다시 한국에서 공연을 했고 그 때의 후유증으로 내가 그에게 얼마나 빠져있는지를 새삼스럽게(?) 알게 되었다. 양일간의 공연을 모두 보고 나서 그 다음날 현실로 돌아왔을 때 쉼없이 흐르는 눈물과 답답한 가슴. 여고생 시설 나도 한 팬질 했기 때문에 불타오르고 벅차고 이런 느낌은 많이 느껴봤지만 그런 마음의 소용돌이는 둘째치고 며칠동안 음식을 입에 대지도 못하고 무슨 수맥을 건드린듯 하루 종일 눈물이 나오는 물리적인 신체의 반응이 놀랍기만 했다. 사실 지금 생각해봐도 그 때의 난 굉장했었다.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느낌. 공연 제목은 그래서 그렇게 지었던 걸까. 약에 절여져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는 지경이 되어 버린 걸 미리 예상이라도 한걸까.
지금 나는 반 폐인이 다 되어서 남들 앞에선 뭘 해도 남부끄러운 입장이고 본인 스스로에겐 자신에 대한 책망과 실망으로 빠져나올 수 없는 늪에 곧 온 몸이 잠길 것 같은 상태. 삶이 나를 힘들게 하고 내 자신이 나를 힘들게 할 때 잠시 기분전환으로 보게 된 다큐가 발을 헛디뎌 빠져나올 수 없는 늪에 빠질뻔 한 나를 뒤에서 받쳐줬다. 그저 잘생긴 얼굴 한 번 보고 그윽한 목소리 한 번 듣고 하악질이나 격하게 해보자는 불순한 동기에서 본 다큐가 의도치 않게 내 손을 잡아 주었다. 무슨 일이든 치밀한 계획을 세워서 꼼꼼하게 확인하고 공연할 때마다 빠지지 않는 리허설, 그리고 매번 하는 그 리허설에서 늘 추구하는 완벽함. 완벽함. 완벽함. 원래는 자신은 굉장히 평범하고 나태한 인간이지만 그것을 위해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고 노력한다고 말하는 그의 모습. 인간 대 인간으로서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고 나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과 반성을 통해 새로운 결심을 하게 만든다.
지난 토요일 미스티님으로부터의 문자와 자비로운 그 사진들을 보고나서 가쿠동 익명게시판에 얼른 글을 쓰고 고이고이 모셔두었던 첫 내한공연 다큐를 틀었다. Gackt에게도 나에게도 굉장히 의미가 있는 디아볼로즈 아시아 투어 그 첫번째 공연. 내가 알기 전에도 그는 매사 1분 1초를 재고 있는 듯 열심히 완벽함을 지향하고 있었다. 기자회견에서 한국말로 전하는 첫인사와 이어지는 짤막한 그의 메세지. 단순히 인사치례라고 여기기엔 상대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멋지다. 음악이 좋고 목소리가 좋아서 그 뮤지션이 좋고 그 사람이 좋아지고.. 어느새 대책없이 좋아져버린 그 사람의 철학이나 세계관 마저 좋아진다. 그의 뚜렷한 주관과 굉장한 노력. 단순히 팬이 아닌 한 인간으로서 정말 닮고 싶다. 멋진 남자다.
아아... 어떻게 이 남자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10년이고 20년이고 언제까지 어디라도 함께 갈 수 있을 당신은 내 삶의 롤모델, 나의 뮤즈.

덧글
괴이한은영 2008/11/04 19:06 # 답글
각트..참 재밌는 사람이죠^^ 잘 지내시나요? 걱정하면서 토리님을 기다렸답니다;ㅁ;TORY 2008/11/08 14:21 #
기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ㅠㅠㅠㅠ그치만 아직 시즌2와 시즌3이 더 남아있어서 (뭔소리?) ㅎㅎㅎ
저는 잘 지내고 있었어요~
은영님 보고 싶었답니다-
Vincent 2008/11/05 18:09 # 답글
와아 정말 오랜만에 뵙니다 ~ 잘 지내시죠?블로그 완전 접으신줄 알았어요 =ㅁ=!
TORY 2008/11/08 14:22 #
그동안 글 올리고 싶어서 근질근질 난리도 아니었답니다;;;반가워요~
2008/11/08 01:14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TORY 2008/11/08 14:24 #
허허허사실은 저도 반대로 h를 그런식으로 알게 되어서 (...)
그 타카노유리 광고 합성 사진을 보고 급흥분했던 기억이.....
L들은 9월에 왔었죠? 그 때도 초대가 들어왔는데 지방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어서 못갔답니다 ㅠㅠㅠㅠㅠ